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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야쿠] 귀신놀이

오하요미 2024. 11. 10. 19:30

  "선생님 방은 여기세요."
  "네."
  "편히 쉬시고, 필요한 것들은 주변에 상주하는 가정부를 부르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네?"
  "...아리사 잘 부탁드립니다."
  "네."
 
   야쿠 앞에 있던 남자, 아리사의 아버지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눈빛으로 많은 것을 전했다. 눈빛이 길어질수록 야쿠에게 안기는 부담감은 커졌다. 눈을 계속해서 마주치긴 했지만 야쿠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마음 속으로는 수 백 번도 더 피했다. 아예 그만 보라고 눈을 찌르고 싶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런 야쿠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아리사의 아버지는 - 가주님이라고 부르랬다 - 헛기침을 두어번 하고는 방을 나섰다.
  문이 닫기고, 문고리가 살짝 흔들리며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야쿠는 저도 모르게 참고 있던 숨을 작게 내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앞으로 자신이 얼마나 될 지 모르는 기간을 지낼 곳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야쿠는 입주 가정교사를 하기로 제안을 받았다. 야쿠는 고민할 것도 없이 수락했다. 그야 제안을 한 집안이 이 동네, 아니 이 도시에서 가장 잘 사는 집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인기가 많아 야쿠에게까지 제안이 올 수가 없었을텐데, 막 졸업하고 일할 곳을 찾을 생각에 머리가 아픈 졸업생에게는 그런 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본가로 다시 들어오면서 어머니에게 전해 들은 오만가지 소문에 따르면, 그 집안의 차기 가주가 될 막내 아들이 일찍이 명을 달리하고 장녀가 다니던 학교에 가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집에 혼자 있는 동생이 외롭다나. 처음엔 가정교사를 불러 홈스쿨링을 시키려고 했댄다. 하지만 집중하지 않고 옆에 인형을 앉히고 대화를 나누기에 바빴다고 한다. 가정교사가 혼을 내려고 하면 가정교사를 째려보더니 그대로 기절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렇게 한 명, 두 명이 거쳐가고 야쿠의 차례까지 왔다. 이번에는 입주까지 하여 장녀를 일거수일투족 관리할 것을 부탁했다. 보수는 충분히. 그러니 싫을 이유가 없었다. 넓은 집에서 살아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고, 돈도 두둑히 준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거기다가 교육과를 나온 야쿠가 첫 경력으로 하기도 좋은 일이다. 아마 아리사가 자는 시간 외에는 계속 곁에 붙어 있을 거라 개인 시간도, 야쿠가 좋아하는 운동 시간도 당분간은 없겠지만 적응하면 차차 만들어나갈 생각이었다. 뭐, 하나 걸리는 게 있다면 알고 있는 바로는 아리사가 저와 또래라는 것. 인사한다고 처음 마주했을 때도 엄청나게 큰 키에 야쿠는 당황하기도 했다. 하지만 야쿠는 키에 밀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름 웃음을 지으며 먼저 악수를 건네는 여유까지 보였다.
 
  일단 들고 온 짐을 풀었다. 아, 그 전에 모든 서랍을 열어 준비해 온 물티슈로 닦았다. 먼지를 얼추 닦아낸 듯 했을 때 저만한 캐리어를 눕힌 후 열어 개어둔 옷을 그대로 옮겨 넣었다. 백팩에 있던 책을 꺼내 책상에 세워두었다. 이 정도면 선생님 같아 보이겠지. 각종 전공책과 노트 사이에 끼여있는 작은 책을 발견하고는 잠시 정리를 중단했다. 검지손가락 끝에 닿은 하드커버를 당겨 동화책을 꺼냈다. 야쿠는 '귀신놀이'라고 써져있는 책의 표지를 네 손가락으로 쓸더니 책을 펼쳤다. 매번 봐도 질리지 않아, 하고 중얼거리며 기대하는 듯한 얼굴로 첫 장을 읽어내려갔다. 매번 봤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 너덜해진 페이지가 야쿠의 숨소리에 팔랑거렸다. 집중한 야쿠의 눈이 짝눈이 되었다. 한쪽만 커져 힘이 들어간 눈이 아프지도 않은지 계속해서 그 상태를 유지했다. 
 
  가족이 보고싶었던 아기 귀신은 오늘도 자신의 방에서 기다렸다.
  이불을 덮고 누워 어머니와 아버지가 잘 자라는 인사를 하러 와 주기를 기다렸다.
  누나가 무서운 이야기를 해준다며 곰인형을 들고 와 주기를 기다렸다.
  사실 그 이야기는 하나도 안 무서웠다. 누나만 무서워한 것이었다.
  문 앞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이제 어머니와 아버지가 들어오시겠지.
 문이 열렸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기 귀신을 한참을 바라보다 문을 닫았다.
이불을 덮어주었으면 했는데.
문이 또 열렸다. 누나는 곰인형을 안고 아기 귀신을 한참 바라보다 문을 닫았다.
무서운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했는데.
 
  옆방에서 살금거리는 발소리가 들리다가 우당탕 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옆방은 아리사의 방이 아니었다. 아마 아리사의 동생, 이 집안의 막내 아들의 방이었던 걸로 지나가는 길에 들었던 것 같다. 아리사가 사고라도 쳤나 싶어 야쿠는 책을 내려놓고 옆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문이 닫혀 있었다. 아리사가 들어간 흔적도 없었다. 무언가 수상하다고 느낀 야쿠는 창문이 열려 있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창문을 닫으러 들어가기로 했다. 이제 저도 이 집에 사는 일원이니 이 정도는 들어가도 괜찮겠지.
 
  야쿠는 문을 열었다.
 
  창문은 열려있지 않았다.
 
  야쿠의 눈 앞에는 어떤 남자가 서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이 집에 오기 전 명을 달리했다던 막내 아들이 살아있었다.
 
 
 
 
 
 
 
 
 
 
 

귀신놀이

하이바 리에프 X 야쿠 모리스케

 
 
 
 
 
 
 
 
 
 

  야쿠는 제 눈 앞에 벌어진 상황을 파악하려고 했다. 창문도 열려있지 않고, 방문도 닫혀 있었는데 사람이 이 안에 있었다니. 실력 좋은 도둑인가 싶어 금세 경계 태세를 취했다. 악인 제압 정도야 야쿠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으니까. 야쿠와 야쿠 앞의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를 쳐다봤다. 노려봤다, 가 더 맞는 표현일 것 같았다. 긴 침묵을 깬 것은 야쿠.
 
  "...너 뭐야?"
  "......"
  "너 뭐냐니까? 방 주인도 아닌 것이."
  "하?"
  "하?"

  남자는 '방 주인'이라는 말에 무언가 심기가 불편해졌는지 인상을 팍 구기며 입을 열었다. 
 
  "이 집의 수행인인데 이 방에 들어온 거면 가주에게 이야기할 거다. 누구냐고 물었어, 난."
  "퍽이나 얘기하겠다."
 
  남자는 코웃음을 쳤다. 예상과는 너무 다른 남자의 반응에 야쿠도 슬슬 열이 받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물어본다, 너..."
  "내가 이 방 주인이야."
  "뭐?"
  "내가 이 방 주인이라고."
 
  더 예상치 못한 남자의 다음 말에 야쿠도 어이없어 하며 웃었다. 헛소리를 하는 듯 하니 빨리 집안의 경호원을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그런 생각도 스쳤다. 회색 머리, 녹색 눈...아까 마주했던 아리사의 아버지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생각이 드는 얼굴이었다. 날카로운 눈매가 아리사와 닮았다. 설마...하지만 막내 아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걸, 하는 생각으로 복잡해지는 머릿속을 정리하며 남자를 다시 쳐다봤다. 평정을 유지하고 이 남자가 저를 공격하지만 않게 하도록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자가 저를 비웃으며 뱉은 말 때문에 모든 평정심이 무너졌다.
 
  "너는 여기서 뭐 하니, 꼬마야."
 
 
 
 
 
 
 
 
 
 
 
  "...꼬마야?"
 
 
 
 
 
 
 
 
 
 
  야쿠는 남자의 무릎 뒤를 차 남자를 앞으로 고꾸라지게 만들었다. 퍽, 하는 소리가 방에 울리고 남자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퍽 하는 소리는 경쾌하게 들렸는데 왜 남자가 으억, 하는 소리는 이불 속에 묻힌 소리처럼 들렸는지 모르겠었다. 눈높이가 낮아진 남자를 내려다보며 야쿠는 방금 한 말을 다시 해 보라고 낮게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남자는 자신이 야쿠에게 도전적인 말을 한 것도, 자신이 야쿠에게 발로 채인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아 보이는 듯 했다. 그 외의 것에 놀란 듯 한 얼굴을 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야쿠는 알 수가 없었다.
 
  "지금 날 찼어?"
 
  아닐지도.
 
  "그래, 찼다. 잘못 놀린 네 입을 탓해라."
  "지금 날 건드린 거야? 날?"
 
  슬슬 짜증나기 시작했다.
 
  "그래, 건드렸다. 한 대 찼다. 왜, 뭐. 그렇게 억울하면 아무나한테 꼬마라고 부르는 버릇 고치든가."
 
  남자는 무릎을 여전히 꿇은 상태에서 야쿠를 올려다보았다.

  "...너 이름이 뭐야?"
  "...하?"
  "이름."
  "통성명을 요구할 때는 보통 자신의 이름을 먼저 말하고 묻는다. 네 이름부터 말해."
  "난..."
  "..."
  "난 리에프."
  "그래, 리에프. 난 야쿠 모리스케다. 갓 대학을 졸업했지."
  "...성도 말해야하는 거였어?"
  "싫음 말아."
  "..."
  "누가 뭐래?"
  "...하이바, 하이바 리에프."
  "그래그래, 하이바...하이바?"
  "응."
  "...나도 나이 얼추 말했어. 너 몇 살이야?"
  "나?"
  "응."
  "나이는 이제 안 세어."
 
  야쿠의 한쪽 눈이 커졌다.